처음 행사를 기획했을 때는 직군끼리 모이는 세션 1회와 직군과 관계없이 모이는 세션 2회를 진행하려고 했었는데, 주변 피드백을 받아보니 이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직군과 관계없이 이야기하는 걸 더 선호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모든 세션을 직군과 관계없이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기획을 바꾸려고 하니 이름표에 직군에 대한 표시가 필요할지 고민이 되었어요. 그런데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라는 걸 이름표에 붙이고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길 것 같았어요. 이 사람 기획자라서, 디자이너라서, 개발자라서 이런 말을 하나?라고요.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자기소개를 형용사로 할 수 있게 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제안받았어요. 그래서 AI들과 형용사 목록을 뽑고, 그중에서 선정한 형용사를 라벨지에 인쇄해서 이름표에 스티커로 붙일 수 있게 했습니다. 형용사로만 표현하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MBTI나 커피, 취미 같은 것들이랑 연관된 단어도 지어서 같이 스티커로 만들었죠.
행사 장소에 참가자가 오면 제가 간단한 인사를 하면서 체크인했고, 바로 이름표 꾸미기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름표 꾸미기 테이블로 이동했어요. 참가자들은 여러 가지 스티커와 펜, 색연필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름표를 열심히 꾸며주셨어요. 행사에 처음 오면 아무래도 뻘쭘한 느낌이 있는데, 이 작은 행동으로 그걸 좀 녹이고 싶었어요.
네트워킹 세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참가자가 집으로 돌아갈 때 그래도 여러 명이랑 이야기해 봤다고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였어요. 어떻게 해야 한 사람이 여러 명과 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대관한 곳의 사진을 살펴보는데 준비된 테이블이 딱 6개더라고요. 전체 인원 30명 기준으로 6개의 테이블에 5명씩 앉아서 네트워킹을 작게 시작하면 그래도 모두가 어색해도, 한마디씩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세 번의 네트워킹 세션에서 5명의 구성이 달라져야 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게 되니까, 어떻게 중복되지 않게 조를 짤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모든 계산까지는 무리여서 이 부분은 AI에게 배열을 구성해달라고 했고, 여러 번의 검증 끝에 그나마 이미 대화를 나눈 사람과 여러 번 만나지 않는 구성을 짤 수 있었어요.
세 번의 자리 이동 순서를 어떻게 참가자에게 각각 알려줘야 할지가 다음 문제였는데, 페어에 갔을 때 뽑기가 있는 부스가 인기가 많았던 게 생각이 났어요. 사람들이 뭔가 뽑는 건 어려워하지 않으니까, 뽑기를 활용해서 순서를 알려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1번부터 30번까지 각각 번호에 맞는 자리 이동 순서를 적은 쪽지를 만들어서 그걸 뽑게 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어요.
그리고 네트워킹 세션이 시작할 때 ‘자, 이제 대화하세요!’할 순 없으니까, 세션마다 쓰일 대화 주제들이 필요했어요. 참가자가 참가 신청을 할 때 설문에 적어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다섯 개의 주제를 선정했고, 각 주제에 맞는 질문들을 AI와 정리했어요.
그런데 질문들의 난이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이 됐죠. 너무 가벼운 주제만 있으면 처음 만난 사람과 사적인 영역의 대화를 하게 될 것 같았고, 너무 무거운 주제만 있으면 행사가 답답해질 것 같았죠. 그래서 약간 어려운 주제와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제를 섞어서 총 70개의 질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 질문들도 익숙한 경험인 뽑기를 통해 선정할 수 있게 했죠.
보통 행사에 가면 스티커 같은 걸 많이 받죠. 저는 그렇게 받은 스티커들은 바로 쓰기 아까워서 묵히다가 결국엔 버리는 편이라, 참가자 전원에게 주는 굿즈는 다른 행사들과는 다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개인적으로 동료분께 선물했던 키캡 키링이 떠올라서 이걸로 해야겠다고 결정하자마자 바로 결제했어요.
이 키캡 키링을 어떻게 나눠드려야 재미있을지 생각했는데, 네트워킹 세션에 필요한 쪽지를 캡슐에 넣어서 한 번에 뽑으면 간단하게 풀 수 있었어요. 찾아보니 뽑기 박스와 뽑기 캡슐을 함께 파는 곳이 있어서 직접 박스부터 제작하지 않아도 됐어요. 이왕 재미있는 방법을 쓸 거니까 조금 더 유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포켓몬스터의 오박사 이미지를 쓰기로 했어요. 포켓몬스터 게임을 시작하면 오박사가 세 포켓몬 중에 하나를 데려가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걸 활용하면 조금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행사를 만들다 보니까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첫 번째 행사니까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님과 티셔츠와 모자 굿즈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IT 행사인데 티셔츠가 빠질 수 없죠.
그런데 그냥 티셔츠에 인쇄하는 건 너무 쉽고 여러 번 해봤으니, 다른 방법으로 하고 싶었는데 마침, 디자이너 님께서 원단부터 고를 수 있다고 해주셔서 원단도 고르고 프린팅 방식도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어요. 차콜 색의 티셔츠에 차콜 색의 날염을 해봤는데, 비슷한 톤이지만 로고가 잘 보이는 게 느낌이 좋았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검은색 옷밖에 안 입거든요. 그래서 티셔츠는 예뻤지만, 제가 많이 입고 싶어서 검은색 원단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샘플로 받은 차콜 색 티셔츠를 세탁했는데, 날염이 다 뜯어져 버리는 거예요. 디자이너님도 저도 너무 놀라서 알아보니 특수 날염은 옷에 나염이 정착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그 시간을 주지 않고 세탁을 해버려서 날염이 다 뜯어진 거였어요.
행사까지는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라 티셔츠를 나눠주면서 세탁은 다음 주에 하셔야 해요 라고 하는 건 어렵고, 또 같은 문제가 나타날 것 같았죠. 특수 날염을 하면 멋진데 세탁이 위험했고, 시간도 촉박해서 어떡할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마침 검은 원단에 검은 특수 날염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반 날염으로 진행해야 했는데, 오히려 세탁에도 문제가 없고 날염은 유광의 느낌이 나고 원단은 무광의 느낌이 나서 차콜 색의 티셔츠보다 더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실로 로고 자수를 놓은 모자와도 세트 같아 보여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티셔츠와 모자는 많이 만들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재고를 둘 곳도 없고, 비용 때문에 소량으로 요청했는데 멋진 굿즈들을 소량으로 만드느라 디자이너님께서 많이 고생해 주셨어요.
무사히 첫 번째 행사가 마무리됐지만, 이번이 끝이 아니도록 계획을 구상하고 있어요. Opsworkers의 행사는 가볍게 모이는 칵테일챗과 정기적인 ( ) Meetup, 비정기적인 ( ) Meetup으로 나눠서 운영될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서 부족했던 것과 과했던 부분들을 수정한 행사로 만들 예정이에요. 아마도 이번 첫 번째 행사와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행사에 도움을 주신 w0nder님, 스르륵 님, 굿즈 생산에 힘써주신 디자이너님, 행사 당일 도와준 요정 스텝님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어쩌면 너무 용감한 대문자 I (2)